“‘아이폰의 순간(iPhone moment)’이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다가오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월 세계적 컴퓨터그래픽 콘퍼런스 ‘시그라프’에서 AI 기술의 파급력을 아이폰 등장에 빗대어 말했다. 오픈AI사의 챗GPT가 불러온 산업계 파장은 글로벌 빅테크들의 스타트업 투자 경쟁을 촉발했다. 생성 AI 생태계 선점을 위해 국적을 가리지 않고 기술적 우군을 품 안에 끌어안으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엔비디아가 국내 AI 스타트업인 트웰브랩스에 투자를 결정한 것도 이 같은 생성 AI 주도권 확보 경쟁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창업자인 이재성 트웰브랩스 대표는 국방부 사이버작전사령부에서 병역 의무를 이행하다가 초기 창업 멤버들을 만났다. 글로벌 투자자에게 주목받은 계기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연 기술경진대회였다. 당시 이들은 영상 이해 AI 모델을 개발해 카카오브레인, 텐센트 등 주요 경쟁자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캐피털(VC) 인덱스벤처스 등이 이 업체에 초기 투자했고, 세계적 AI 석학인 페이페이 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오픈AI의 경쟁사 코히어의 에이단 고메즈 대표 등을 자문단으로 영입했다.
트웰브랩스의 AI 모델은 영상 내 대화 내용, 객체 행동, 문자, 로고 등 다양한 정보 유형을 이해한다. AI가 영상 내 요소의 닮음 정도(벡터값)를 분석해 사람의 인지 과정과 동일한 형태로 정보를 파악한다. 업체는 이 기술로 최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의 ‘세계 50대 생성 AI 스타트업’,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의 ‘최고 유망 AI 스타트업 34’ 등에 선정됐다.
투자업계에선 생성 AI 시장을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한다. 핵심 LLM과 AI 반도체 등을 포함해 생태계 기본을 닦는 AI 인프라 영역이 단연 첫 번째다. 해당 국가의 언어를 잘 알거나 법률·금융 등 특정 영역을 이해하는 AI 모델은 그다음으로 분류된다. 마지막이 AI 모델을 활용해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응용 애플리케이션 분야다. 현재 빅테크들의 투자는 첫 번째 영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 VC 투자 담당 임원은 “최근 빅테크의 AI 투자 경향을 보면 LLM, AI 반도체, AI 응용 애플리케이션 등 자신들이 약한 파이프라인을 어떻게든 보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며 “MS와 구글이 AI 반도체까지 만들고, 아마존이 LLM을 개발하는 앤스로픽에 투자한다는 의미는 이제 1~2년 안에 AI 헤게모니 싸움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AI 스타트업의 ‘몸값’ 양극화는 더 심해질 전망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이젠 국내에서도 창업가 경력이 좋거나 이름이 알려진 생성 AI 업체는 기업가치가 너무 비싸 중소형 VC의 투자가 불가능하다”며 “마치 임상을 통과한 회사 가치만 부각되는 바이오 섹터와 비슷한 투자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시은/김종우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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